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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 가장 신기한 건 한국에 있을 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추억, 아니 추억이라기 보다는 기억과 느낌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1.
이건 정말 단 한 번도 기억해 본 적이 없던 것인데,
어릴 때, 아마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겠지,
교회를 갈 때는 항상 우리집을 들른 후에 비슷한 동네의 다른 집으로 갔는데,
아마 (정)슬기네 집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인성, 인철이네 집이었을지도
(생각해 보니 슬기가 지금 중학생이니, 내가 초등학교 입학한 후일 수도 있겠구나.)
첫째는, 같은 "경남 아파트"라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였는데,
우리집은 5층짜리 건물이었는데, 거기는 15층짜리 건물이라는 것에 신기하며
아이들이 언제 내려올까 기다렸던 기억
둘째는, 그 아파트 바로 옆에, 정말 바로 옆에 절이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에 교회를 가면서 그 절을 오랫동안 지켜본다는게
참 아이러니 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은 추억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2.
난 초등학교 3학년 때 내가 살던 도마동에서 월평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월평동에서 다니던 갑천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정말 많은데,
도마동에서 다니던 도마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정말 없다.
근데, 그 중에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건 어느 소풍날인데
나와 매우 친했던 친구 - 이름을 은성으로 기억한다 - 와
소풍을 기다리면서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억이 비도 오고 있었고, 소풍도 취소되었었다.
그런데도 그 친구와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운동장에서 계속 놀았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우릴 많이 찾았으려나?

#3.
예전에는 집에 가기 위해 서대전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기 위해 대략 세이백화점 앞쪽으로 걸어가면서
집에 왔다는 편안함에 흠뻑 젖은 기분을 만끽할 때가 많았는데,
요새는 집에 올 때도 돌아갈 계획을 세우면서 와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4.
초등학교 때는 학교의 일진이라는 애들이 참 무서웠다.
그 중에 한 명이 내 모자를 빌려갔는데,
안 돌려줘서 내가 전화를 해서 돌려달라고 하자
자기네 집에 와서 찾아가라는 얘기를 했었다.
그 친구네 집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벨을 누르고 모자를 돌려 받으면서
내가 빌려준 사람인데 이렇게 받아야 하나 싶었다.
지금 그 일진 친구들을 만난다면 어떨까?
무서울까? 어색할까? 아니면 우월한 느낌일까?
제발 우월한 느낌은 아니었으면. 절대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다.

#5.
KBS에서 했던 연주회, 본과 2학년 여름이었겠지,
브람스 4번이었나, 4악장 마지막?
지휘자 선생님의 능력에 놀라고, KBS에 놀라고, 음악반에 놀라고,
모든 것에 심취해서 4악장의 마지막 몇 분은 어떻게 연주했는지 모르겠다.
아무 기억이 없고, 정신이 없고,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그 무대 천장에 달려있던 노란색 조명, 그 조명이 무대를 비추는 느낌. 그게 다야.
옆구리가 아프고, 가슴은 벅차 오르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느낌.
가슴 속의 차오르는 뜨거움은 마지막 연주 때 있던 게 아니었다.

#6.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고등학교의 첫 시험
도덕 시험을 망치고 - 사실 망친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렸었나.. -
저녁 때 공부하다가 어머니께 울면서 전화했었다.
어머니는 한걸음에 기숙사로 달려와 주셨고, 난 어머니 품에서 울었다.
3~4일 시험 중에 첫 날 시험이었는데, 다른 날은 잘 봤을까.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울어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려나.
어쩌면, 내가 어머니를 안아본 것도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마지막이지 않게 노력해야지.

#7.
고등학교 때, 평소에는 기숙사도 학교 내에 있으니 계속 학교에 있었지만
토요일 저녁 시간 떄에는 밖으로 나가서 가족과 저녁을 먹고 들어올 수 있었다.
집에 갈 수도 있었지만 공부해야 하니 집에는 안 가고
아버지께서 데릴러 오시면 가족끼리 나가서 외식하는 정도였는데,
그러고 나서 다시 아버지 차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올 떄의 느낌.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느끼기 싫은 그런 외로움으로 가는 듯한 느낌.
슬픈 것이나, 극도로 외롭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내 인생에 느꼈던, 감정 또는 느낌 중에 가장 최악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걸 지난주 일요일에 방에 혼자 있다가 문득 느꼈다. 흠..

#8.
대학교 갓 들어왔을 신입생 시절,
같은 학교에 입학한 중학교 친구와 학교 외곽순환도로를 걸을 일이 있었는데,
음, 그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왜 느낌이 기억이 안 날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놀라운 추억이다.
그 밤 중에, 그 어두운 곳을 친구와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
그 친구와 나는, 지금도 그 때 우리는 어렸었다고 말한다.

#99.
어차피 인생은,
그리고 내가 항상 생각하는 건,
어떤 경우에라도 현재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한 거라는 건데,
정작 나는 그런 걸 못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 기억이 나지 않았으면, 없어졌으면 하는
기억들도 많은데, 그런 것들도 생각이 많이 난다.
그런 것도 언젠가는 기억에서 추억이라는 이름과 느낌으로 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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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0 09:56 2010/07/3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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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이곳이야 말로 의사의 천국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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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놀라운 곳이다. 의사에 대한 대우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김웅 선생님을 뵈러 Mayo 클리닉에 갔을 때에도 이런 곳이 있었고 - 의사들은 정말 음료수가 편의점 만큼 빽뺵히 차 있고, 빵과 샌드위치, 커피, 쥬스 등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 그 때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을 상당한 아쉬움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있는 미네소타 대학교 병원 수술장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 건물을 새로 증축하는 것 같더니 그러면서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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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내부에서 본 모습. 앉아서도 외부가 탁 트여 있어서 참 좋다. 미네소타는 전반적으로 여름에는 날씨가 매우 좋아서 이렇게 앉아서 밖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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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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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우유와 젤리와, 저 왼쪽에 있는 것은 프림인가.
우유도 그냥 우유, Fat free 등등 다양하게 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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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장에 있던 빵들과 잼, 칼, 포크, 그릇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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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도넛들과 과일들. 사실 도넛은 더 많았는데, 나와 선생님이 조금 먹고 난 후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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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커피 먹을 때 사용하는 것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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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도 그냥 자판기 커피가 아니라 기계에서 직접 나오는 커피다 ㅋ
우리 학교에 있는게 그냥 커피라면, 이건 TOP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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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음식이 있던 곳의 반대편의 모습. 대형 TV도 있고, 수술장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도 있고,
소파도 있어서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의사들이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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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른 쪽의 모습. 역시 편의를 위해 컴퓨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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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외과 의사들은 항상 타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도까지 받으면서 연습하네 ㅋ 수술복에 실 묶어서 언제나 타이 연습하는 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똑같군!

  우리나라도 열심히 수술하는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을 위해 이런 공간 하나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능률이 올라서 수술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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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0 09:02 2010/07/3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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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있던 Grand Round 중에 찍은 사진. 정형외과에서는 매일 오전 7시에 각 분과별로 컨퍼런스가 있는데, 각 분과의 레지던트 뿐만 아니라 모든 분과의 레지던트, 펠로우들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한다. 물론 교수님은 자신이 속한 분과의 컨퍼런스만 오는 것 같고, 레지던트 숫자가 많지가 않아서 와도 별로 안 된다. 그런데 금요일에 있는 Grand Round에는 Twin city(미네아폴리스/세인트폴)에 있는 Fairview 병원 및 다른 지역 병원의 의사들까지 다 온다. 한 50~60명은 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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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엊그저께 수술 및 외래를 참관했던 Dr. Van Heest 의 내용이 사진과 함께 벽에 걸려있다. 여긴 의료체계가 우리나라랑 달라서 환자를 정말 열심히 진료하고, 랍보도 좋고~ Van Heest도 그런 선생님 중에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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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수술장에서 가장 놀란 것은 우리처럼 갱의실에서 그냥 옷을 가져가는 체계가 아니고, 의사가 본인의 카드를 기계에 대야 옷이 나와서 옷을 가져갈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옷의 크기도 상의/하의의 조합에 따라 10여가지 이상의 목록이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크기의 수술복을 입을 수 있다. (참고로, 이 기계는 갱의실 내부에 있다.) 누군가가 수술복을 입고 의사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무슨 일을 벌일까봐 이런 기계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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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장 갱의실의 모습. 탈의실이 우리의 옛날 철 캐비넷이고, 자물쇠를 사용해야 해서(그냥 열어놓을 수도 있지만) 좀 불편하고 투박해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캐비넷 사이가 넓어서 좋다. 우리 병원은 캐비넷 사이가 하도 좁아서 한 명이 옷 갈아 입으면 다른 사람이 지나갈 때 "죄송합니다" 이러면서 지나갈 정도로 불편한데 말이지.
  그리고 여기는 수술할 때 사람이 몇 명 들어오지 않는다. 수술 필드에 있는 사람은 교수/레지던트/스크럽간호사 이렇게 세 명이 끝이다. 거기에 많아야 circulating 간호사, 학생 이렇게 다섯 명이다. 필요한 사람, 특히 레지던트 수가 적으니 갱의실도 사람이 북적거리지가 않는다. 내가 탈의실 갈 때도 사람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교수님도 여기서 수술복을 갈아 입으신다. 우리는 교수님을 우대하는 측면에서 교수님 갱의실은 따로 있는데, 여긴 그런거 없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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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0 08:44 2010/07/3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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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장을 들어가는 입구에 보니, 벽면에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사진인지, 아니면 직원들의 사진인지 잘 모르겠다. 여튼, 서로를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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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장 입구의 스테이션. 수술장을 이용할 때 항상 수술복을 가져가려면 카드가 필요해서 그걸 가져가느라 저기 계신 간호사 선생님들께 인사를 많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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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복을 펼쳐 놓은 모습이다. 우리 병원에서는 파란색(학생, 레지던트)이나 하늘색(교수님)인데, 여기는 앞면은 하늘색이고, 뒷면은 흰색에 회색으로 세로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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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장에서 사용하는 (수술용은 아닌) 장갑. 완전 멸균상태가 아닌 덜 멸균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갑인데, 우리 병원에서는 불투명한 흰색이었던 것 같은데, 여긴 파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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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장 한쪽 벽면에 있는 화이트보드.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게 되어 있다. 심지어 학생도 적어야 해서, 나도 매 수술마다 내 이름을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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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장의 모습이다. 특이한 사항은 여긴 저렇게 기본적으로 가로로 된 컴퓨터를 세워서 책상 위에 놓거나, 아예 공중에 잘 모셔두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아직 가로로 된 컴퓨터가 많은지.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말이다.
  오디오 시스템이 있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다. 수술 중간에 음악 들으면서 수술하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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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용 무영등의 모습. 사실 저런 형태 말고 다른 형태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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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1 12:59 2010/07/2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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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있던 컨퍼런스.
컨퍼런스는 월~금 매일 오전 7시에 있는데, 금요일에 있는 Grand Round
(우리나라 grand round와 비슷해서 파견 병원을 포함한 모든 병원의 정형외과
선생님들이 오시는 듯, 심지어 의료기기 회사 사람들까지 온다;; )
를 제외하면 1~2명의 교수님과 10명 내외의 레지던트, 학생이 참석한다.
한국에서 한글로 된 강의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영어는 어쩌라는거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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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외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있던 M&M.
외래 중간에 쉴 수 있는 Work room에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손에서는 녹지만 입에서는 녹지 않아요" 가 기업 모토랬나 ㅋ
여튼 달고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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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Work room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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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이나 금요일에는 사진을 찍지 못할 것 같아서 미리 Dr. Putnam과 Amy와 사진을 찍었다.
가장 왼쪽은 Mike라는 간호사(맞나?)인데, 성격 정말 좋다 ㅋ

※ 미네소타 대학교 Fairview 병원의 외래 체계
하루(또는 오전 or 오후) 당 10~25명 정도의 환자
한 교수당 4~5개 정도의 외래 방, 1개의 Work-room이 있다.
환자는 오는 순서대로 외래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게 되며
기다리고 있으면 레지던트 또는 간호사 선생님이 먼저 들어가서 초진을 보게 된다. (약 10~15분)
그 후 교수님이 들어와서 진료를 보게 되며 (약 15~20분)
이후 다음 외래 또는 수술 계획을 잡고 집에 가게 된다.
따라서 환자는 병원에서 약 30~40분 가량 의사를 보게 되며,
기다리는 것도 우리나라 처럼 북적거리는 복도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외래 방)에서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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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1 12:58 2010/07/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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